[심형권 목사] 시편 94:1-23절 묵상
하나님께서 신원해 주시고 보호해 주십니다.

본문
94편은 ‘교만한 자들에게 마땅한 벌을 주소서’로 시작하고 ‘그들의 죄악을 그들에게 되돌리며 그들의 악으로 말미암아 여호와 우리 하나님이 그들을 끊으시리라’는 선언으로 끝납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복수하시는 하나님’, ‘세계를 심판하시는 하나님’으로 소개합니다.
앞의 시편인 93편 1절에서 ‘여호와께서 다스리시니’라는 하나님의 통치에 대한 언급이 96, 97, 99편에 나타나기 때문에 (95, 98편에는 ‘여호와께서 다스리시니’라는 표현은 없지만 그 주제가 나타남), 갑자기 94편에 심판, 복수의 주제는 여호와 통치 시편들의 흐름을 끊는 것 같이 보입니다.
하지만 이 시편이 여호와 통치 시편 안에 있다는 것은 이 시편이 우리가 기대하는 그림으로의 여호와 통치가 아니라, 하나님의 통치의 다른 측면을 보여주는 시편이라는 것을 말해줍니다. 왜냐하면 자기 백성의 고통을 신원하시고, 악인들에게 복수해 주고, 심판하시는 것도 하나님의 통치의 한 부분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94편이 복수, 신원, 심판이라는 하나님의 다스림을 보여주는 시편으로 이해합니다.
먼저, 오늘 본문의 주의 백성들은 원수들로부터 고통을 받는 자들로 묘사됩니다. 6절의 ‘과부, 나그네, 고아’는 약자들 중의 약자의 대명사입니다. 그리고 남편이 없고, 아버지가 없고, 고향이 없는 이들의 모습은 신랑을 잃고, 아버지를 잃고, 본향을 잃어버렸던 이 땅의 성도들의 그림자이기도 합니다.
중세 구 유럽 당시 잠깐 반짝한 시기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교회가 세상의 중심이었던 때는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언제나 소수였고, 약자였습니다. 모세는 “여호와께서 너희를 기뻐하시고 너희를 택하심은 너희가 다른 민족보다 수효가 많기 때문이 아니니라 너희는 오히려 모든 민족 중에 가장 적으니라” (신명기 7:7절)고 했고, 히브리서 기자는 믿음의 사람들의 삶을 “조롱과 채찍질 뿐 아니라 결박과 옥에 갇히는 시련도 받았으며 돌로 치는 것과 톱으로 켜는 것과 시험과 칼로 죽임을 당하고 양과 염소의 가죽을 입고 유리하여 궁핍과 환난과 학대를 받았으니 (이런 사람은 세상이 감당하지 못하느니라) 그들이 광야와 산과 동굴과 토굴에 유리하였느니라” (히브리서 11:36-38절)고 증언합니다. 교회는 숫자나 힘으로 승부하는 공동체가 아니라, 거룩으로 승부하는 공동체입니다. 우리가 스스로 강해지는 공동체가 아니라, 강하신 하나님을 신뢰하고 믿는 공동체입니다.
그래서 8절은 이렇게 말한다: ‘백성 중의 어리석은 자들아, 너희는 생각하라! 무지한 자들아, 너희가 언제까지 지혜로울까?’ 자신을 믿고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는 자들은 자기가 지혜롭고 똑똑하고 남보다 나은 줄 알지만 사실은 어리석고 무지한 자들입니다. 지혜자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이지 자기의 지식과 힘을 의지하는 자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인생의 생각이 허무함을 아십니다(11절). 그러므로 하나님없이 세우는 모든 것은 모래위에 지은 집과 같고, 하나님의 심판과 복수의 바람 앞에 다 무너져 사라져 버릴 수 밖에 없습니다.
지혜로운 자들은 오히려 하나님의 심판을 회개와 회복의 기회로 삼는 자들입니다. 하나님의 심판을 믿지 않고 무시하는 것이 아니라 심판의 메시지를 경고의 말씀으로 받는 자들입니다. 하나님의 심판은 공의롭다는 것을 알고 정직한 마음으로 따르는 자들입니다(1절). 여기서 말하는 마음의 정직은 자신이 죄인이라는 것을 순순히 인정하는 정직을 말합니다. 하나님은 모를 거야 하면서 위선의 삶을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자신의 죄성을 아시고 심판하시는 분이라는 사실을 알고 회개하는 정직입니다.
그래서 12절에서 시인은 이렇게 노래합니다: “주로부터 징벌을 받으며 주의 법으로 교훈하심을 받는 자가 복이 있도다.’ 징벌이 고난이지만 그 징벌을 통해 교훈을 받는 자는 저주가 아니라 오히려 복이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때로 받기 힘들 때가 있지만 그것이 ‘변장한 축복’임을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시인은 이미 그의 고난의 현실 가운데 이 사실을 경험했습니다. 그래서 ‘만약 하나님께서 도움이 되지 않았다면 내 영혼은 벌써 침묵 속에 잠겼을 것(17절)이라고 하고, ‘나의 발이 미끄러질 때 주께서 그 인자하심으로 나를 붙드셨다’(18절)고 합니다. 19절에서는 내가 근심이 많았을 때 위로가 되셨고, 나에게 악행을 행하는 자들에게서 피할 수 있는 반석이 되셨다고 고백합니다. 그리고 그가 배운 교훈을 22절에서 이렇게 요약했습니다: ‘여호와는 나의 요새이시요, 내가 피할 반석이시라.’
하나님께서 신원해 주시고 보호해 주십니다. 하나님만이 우리의 요새, 산성, 피난처, 반석이 되십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자신의 연약함에서 하나님의 능력을 보고 그 분을 피난처로 삼는 사람입니다. 그래야 기도할 수 있고, 찬양할 수 있고, 감사할 수 있고, 참된 예배를 드릴 수 있습니다.
오늘도 하나님을 반석으로 삼고, 하나님과 동행하는 이 땅의 나그네 여정 길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마
라나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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