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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묵상

[심형권 목사] 시편 92:1-15절 묵상

예배에서 은혜를 놓치면 승리의 보장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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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2편은 ‘안식일의 찬송시’ 입니다. 따라서 공적인 예배와 제사 때 부른 찬송입니다. 예배 때의 우리 자세가 어떠해야 하는 지를 배울 수 있습니다. 1-3절은 ‘선하다’(한글 번역은 ‘좋으니이다’)라는 고백에 맞추어져 있습니다. ‘선하다’로 번역된 히브리어는 창조 기사에서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다’고 할 때 바로 그 단어 입니다. 정말로 좋은 것, 선한 것은 하나님께 감사하고, 온갖 악기를 곁들여서 찬양하고 그가 행하시는 인자하심과 성실하심을 선포하는 것이라는 뜻입니다.

 

첫째, 91편에 이어 하나님을 지존자(엘룐-높으신 분)로 부릅니다. 피조물인 우리 인생이 감히 범접할 수 없는 하나님의 광대하심을 보여주는 이름이다. 하나님은 우리와 가까이 계시는 사랑과 자비의 하나님이시지만, 동시에 온 세상의 주권자이시고 창조주이심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예배는 나를 드러내고 나를 높이는 자리가 아니라 하나님을 높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자리입니다.  

 

둘째, 찬양과 경배의 내용은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성실하심 입니다. 시편 기자는 아침마다 주의 인자하심을, 밤바다 주의 성실하심을 선포하겠다고 노래합니다. 언약을 잊지 않으시고 그 언약에 신실하신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입니다.

 

4-5절을 보십시오, ‘주께서 행하신 일로 나를 기쁘게 하셨으니 주의 손이 행하신 일로 말미암아 내가 높이 외치리이다 여호와여 주께서 행하신 일이 어찌 그리 크신지요!’

 

90편에서의 ‘우리의 손으로 행한 일’(17절)과 92편의 ‘주의 손으로 행하신 일’이 대조됩니다. 우리 손의 일이란 ‘감사와 기도’이고 주의 손의 일은 창조와 구원입니다. 높으신 하나님, 지존자의 일과 피조물 된 우리의 일이 구분됩니다. 피조물 된 우리의 일은 이미 이루신 하나님의 구원을 찬양하고 감사하는 것입니다.

 

예배는 내가 하나님을 위해 한 일을 드러내고 자랑하는 자리가 아니라, 나를 위해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을 찬양하고 감사하는 자리입니다. 따라서 예배자와 어리석은 자가 구별되는 자리도 예배의 자리입니다. 왜냐하면 ‘어리석은 자는 이를 알지 못하며 무지한 자도 이를 깨닫지 못하기 때문’(6절)입니다. ‘어리석은 자는 그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은 없다’고 한다고 시편 14:1절은 말해줍니다.  

 

악인은 한 때 ‘풀같이 자라고 흥왕하는 것처럼 보여도 결국은 영원히 멸망할 것입니다(7절). ‘악인’ 하니까 나쁜 짓하고 파렴치한 사람들을 상상하려고 하는 경향이 있는데 성경이 정의하는 악은 그런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그 삶의 주인이 아닌 사람이 악인이다. 자기를 있게 한 창조주를 인정하지 않는 것이 악입니다.

 

반면에 의인들은 13절에 묘사된 것처럼, ‘여호와의 집에 심긴 종려나무이고, 레바논의 백향목’과 같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뜰 안에서 번성하는 자들’입니다. 늙어도 여전히 결실하며 진액이 풍족하고 빛이 청정한 삶을 삽니다. 육신의 회춘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죽어서 부활의 몸을 입을 때까지 우리의 겉 사람은 후패해지고 늙어갑니다. 하지만 우리의 속사람은 시간이 갈수록, 나이가 들수록, 더 진중해지고 폭이 넓어지고 청정해집니다.  

 

그렇다고 성숙한 자신을 드러내지도 않습니다. 15절을 보십시오. ‘여호와의 정직하심과 나의 바위 되심과 그에게는 불의가 없음이 선포되리로다.’ 나의 성숙을 자랑하는 것이 아니라, 나를 그렇게 빚어 가시는 하나님의 정직하심, 나의 바위/피난처가 되심, 그분께는 불의가 없음을 선포하는 삶을 살게 됩니다. 자신의 영광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게 됩니다. 그리고 그 모습은 바로 예배를 통해서 확증되는 것입니다.  

 

예배에서 은혜를 놓치면 승리의 보장이 없다. 감사와 감탄사를 잃어버린 예배는 종교 행위에 불과합니다. 구원과는 상관이 없는 헛된 몸부림에 불과합니다.

 

나의 예배를 망치는 것이 무엇일지를 생각해 봅시다. 나의 관심을 빼앗아 가고 나의 생각을 흩트리는 예배의 방해물이 무엇인지를 생각해 봅시다. 회개치 않는 강퍅한 마음,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 이런저런 걱정과 염려, 불신, 불평, 미움, 용서하지 못하는 마음…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어야 새로운 피조물입니다. 겉사람은 후패해도 속사람은 매일 새로워 집니다. 높으신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 마음에 합한 예배자가 되어, 예배의 은혜를 누리고, 종려나무처럼 번성하고, 백향목 같이 성장하는 복을 누리기를 소망합니다.

마라나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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