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91:1-16절 묵상 > 말씀 묵상

본문 바로가기

말씀 묵상

[심형권 목사] 시편 91:1-16절 묵상

하나님의 때 하나님의 방법이 있고, 하나님의 시간이 있습니다.

본문

 

91편은 어제 본문인 90편에 이어 ‘대대로 우리의 거처가 되시는 하나님’이라는 주제를 확장 시킵니다. 1절의 ‘지존자의 은밀한 곳, 전능자의 그늘’, 2절의 ‘여호와는 나의 피난처, 나의 요새’, 4절의 ‘그의 날개 아래’, 9절의 ‘여호와는 나의 피난처, 나의 거처’와 같은 표현들은 90편 1절의 ‘주는 대대로 우리의 거처가 되신다’는 말씀과 잘 연결됩니다.

 

 90편에서는 창조주 하나님, 영원하신 하나님을 강조했다면(90:2절), 91편에서 하나님은 ‘지존자’, 그리고 ‘전능자’ 로 계시됩니다. ‘지존자’는 높으신 하나님이라는 뜻으로 이 이름에도 장소적 개념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지존자를 너의 거처로 삼으라 그러면 화가 미치지 못할 것’(10절)이라는 말씀은 높은 곳에 계신 하나님의 그늘 아래 안전하게 거하게 됨을 보여주는 그림입니다. 이 땅을 최종 목적지로 생각하지 말고 높은 곳을 바라 보고 거기에 소망을 두고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그 거처로 삼고 사는 자는 ‘천 명이 그의 왼쪽에서, 만 명이 네 오른쪽에 엎드려져도 하나님께서 그를 보호하실 것’(7절)입니다.’

 

 특히 11-12절 말씀이 우리의 주목을 끄는 것은 사탄이 예수님을 시험할 때(마태복음 4:6절) 인용한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그가 너를 위하여 그의 천사들을 명령하사 네 모든 길에서 너를 지키게 하심이라 그들이 그들의 손으로 너를 붙들어 발이 돌에 부딪히지 아니하게 하리로다.’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하나님을 피난처요 거처로 삼는 자들을 하나님께서 보호해 주신다는 약속이지, 그 하나님을 그렇게 시험하라는 말씀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도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 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어디 한 번 잡아 보세요’ 하는 얄팍한 우리의 시험을 만족시킴으로 자신을 증명하셔야 하는 분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영원부터 영원까지 자존하시는 주권자 하나님이십니다.  

 

 광야에서 물이 없어 불평하던 이스라엘이 모세에게 ‘우리에게 물을 내라’고 불평했을 때 성경은 그것은 ‘여호와를 시험한 것’(출애굽기 17:2절)이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이 참 신이라며 물을 내 보세요’라고 하나님을 시험한 것이라는 뜻입니다. 후에 모세는 이 사건을 회상하면서 광야에서 살아 남은 2세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너희가 맛사에서 시험한 것 같이 여호와를 시험하지 말라’(신명기 6:16절)고 합니다. 12명의 정탐꾼들이 가나안 땅의 거인족을 보고 돌아와 ‘이제 우리는 죽었다’고 백성들을 선동했을 때,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향하여 “내 영광과 애굽과 광야에서 행한 내 이적을 보고서도 이같이 열 번이나 나를 시험하고 내 목소리를 청종하지 아니한 그 사람들은 결단코 그 땅을 보지 못할 것’(민수기 14:22절)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스라엘의 죄는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하고 시험한 죄였던 것입니다.

 

 우리도 종종 그런 유혹을 받습니다. 하나님 이렇게 해 주시면 이렇게 할게요. 하나님이 살아 계시다면 보여 주세요…그리고 그런 것을 굉장한 믿음이라고 생각하지만 그것은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하는 불신의 모습입니다. 우리의 시험과 상관 없이 하나님은 지존자이시고 전능자이십니다. 하나님을 거래의 대상으로 이용하려는 모든 시도는 결국 파멸을 가져오게 될 것이고, 그것은 믿음의 탈을 쓴 속임수라는 것을 기억해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의 때 하나님의 방법이 있고, 하나님의 시간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시험을 통해 하나님이 되시는 것이 아니라 영원전부터 영원까지 하나님이십니다. 그 하나님을 우리의 거처, 우리의 피난처, 우리의 요새로 삼고 사는 것이 신앙의 길입니다.

 

 13절 이하의 사자와 독사를 밟는다는 표현은 창세기 3:15절의 여자의 후손이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하리라는 원시 복음의 말씀의 연장이고, 그를 건져 높이고 영화롭게 하리라는 약속은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 그리고 승천을 내다보게 합니다. 16절의 ‘내가 그를 장수하게 함으로 그를 만족하게 하며 나의 구원을 그에게 보이리라고’고 할 때 ‘장수’는 ‘영생’의 구약적 표현입니다. 하나님을 거처로 삼고 사는 자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영원한 구원을 의미합니다. 우리 하나님은 푸른 초장, 쉴 만한 물가에도 함께 하시고, 설사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나가게 되어도 함께 하십니다. 원수가 와도 그의 목전에서 잔칫상을 베푸시고 우리의 잔을 차고 넘치게 하시고, 우리를 우리가 거처로 삼고 고백한 ‘아버지의 집에 영원히 거하게’(시편 23:6절) 하십니다.  

 

 영원하신 하나님을 거처로 삼고 이 땅의 삶을 감사와 자족함으로 살아가는 나그네 여정 길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마라나타!!

0
로그인 후 추천 또는 비추천하실 수 있습니다.

댓글목록0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게시판 전체검색
다크모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