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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묵상

[심형권 목사] 예레미야 25:30-38절 묵상

심판을 언급한 것은 구원하시기 위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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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에 이어서, 하나님의 크고 무서운 심판이 온 세상에 임하게 될 것과 특히 ‘목자’, 즉 ‘양 떼의 인도자들’을 향한 하나님의 진노에 대한 말씀입니다.  

 

먼저, 31절의 땅 끝까지 이르는 ‘요란한 소리’는 여호와의 소리입니다. 하나님은 ‘높은 데서 포효하시고’, ‘거룩한 처소에서 소리를 내시고’, ‘그의 초장을 향하여 크게 부르시고’, ‘세상 주민들을 향하여 포도 밟는 자같이 흥겹게 노래하시는’ 분으로 묘사됩니다. 우리 하나님은 침묵하시거나 뒤에 숨어 계시는 분이 아니라 ‘거기 계시고 말씀하시는 분’이십니다. 기록된 말씀을 통하여, 그리고 그 말씀을 수호하는 교회와 그의 신실한 백성들을 통해 지금도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리고 그 말씀은 ‘내게로 돌아오라’는 초청의 말씀입니다. 그래야 심판을 면하고 구원을 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31절의 ‘포효하다’는 사자의 으르렁거리는 소리, 또는 천둥 치는 소리를 의미하는 단어입니다. 38절에도, ‘그가 젊은 사자같이 그 굴에서 나오셨으니 그 호통치는 분의 분노와 극렬한 진노로 말미암아 그들의 땅이 폐허가 되리로다’라고 말하는 것을 보면, 본문의 하나님은 ‘사자’입니다. 하나님의 진노를 마치 굴에서 나온 젊은 사자와 같이 무섭고, 그 결과는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두려울 것임을 비유하고 있는 것입니다.

 

‘포도를 밟는 자 같이 흥겹게 노래한다’는 표현은 심판을 즐기신다는 말이 아니라, 농부들이 수확한 포도에서 포도주를 만드는 긴 과정에 지치지 않기 위해 흥얼거리는 것처럼 끝까지 지치지 않고 심판하신다는 의지를 보여주는 표현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을 지배하고 있는 단어들은 ‘칼’, ‘재앙’, ‘큰 바람’, ‘죽음’, ‘잿더미’, ‘도살’, ‘흩어짐’, ‘황폐’, ‘호통’, ‘극렬한 진노’, 그리고 ‘폐허’와 같은 두려운 단어들입니다.

 

한 때는 모든 것이 풍성했던 ‘초장’이었고(36절), ‘평화로운 목장’(38절)이었습니다. 그랬던 땅이 폐허가 된 것은 그 목장을 관리했던 ‘목자와 양 떼의 인도자들’의 악행 때문입니다. 여기의 목자와 양 떼의 지도자들은 백성들을 억압하는 왕들과 악행을 일삼았던 제사장, 그리고 헛된 말로 미혹했던 선지자들입니다: ‘너희 목자들아, 외쳐 애곡하라 너희 양떼의 인도자들아, 뒹굴어라 이는 너희가 도살 당할 날과 흩음을 당할 기한이 찼음인즉 너희가 귀한 그릇이 떨어짐 같이 될 것이다’(34절).

 

목자는 사자와 같은 맹수들로부터 자기 양들을 보호해야 하는 책임이 있습니다. 앞에 사자로 묘사된 하나님의 심판을 염두에 두면, 지금 이 말씀은 왕과 지도자들이 사자로 비유되는 하나님으로부터 자기 양 떼들이 먹히지 않도록 정의와 공의, 순종과 겸손으로 울타리를 지켜내지 못했음을 책망하는 비유입니다. 이제 그들의 운명은 양 무리들을 사자에게 빼앗기고 슬퍼하는 목자처럼 될 것입니다. 귀한 그릇이 떨어져 깨지듯이 자신들의 보좌에서 떨어져 깨지고 무너질 것입니다.

 

요한계시록은 예수님의 승천 이후 우리에게 주어진 마지막 계시를 담은 책입니다.  5장에는 사도 요한이 본 환상이 나옵니다. 일곱 인으로 봉해진 두루마리를 오른손에 들고 있는 높은 보좌에 앉으신 이의 환상입니다. 그 인이 하나씩 떼질 때마다 재앙이 임하게 되는데, 하늘 보좌의 옆에서 경배하던 24 장로들 가운데 한 사람이 그 인을 뗄 자를 이렇게 묘사합니다; ‘유다 지파의 사자(lion) 다윗의 뿌리가 이겼으니 두루마리와 그 일곱 인을 떼시리라.’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어린 양의 모습으로 오셨던 예수님은 이제 심판을 시작하는 두루마리를 떼는 ‘사자’의 모습으로 오십니다. 초림의 예수님은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지만, 재림의 주님은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는 사자의 모습으로 오십니다.

 

베드로후서 3:6-7절에 보면, 베드로 사도는 최후의 심판을 노아의 홍수 사건에 빗대어 설명합니다. 하나님의 심판의 경고의 말씀을 무시하고 조롱하던 자들에게 임했던 홍수 심판이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된 것이라고 하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이제 하늘과 땅은 그 동일한 말씀으로 불사르기 위하여 보호하신 바 되어 경건하지 아니한 사람들의 심판과 멸망의 날까지 보존하여 두신 것이라...그러나 주의 날이 도둑 같이 오리니 그 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물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리로다.” 막연한 말이 아닙니다. 이 세상의 마지막은 불 심판이고 그 심판에서 벗어나 공중에서 우리 주님을 영접하게 되는 것이 구원입니다.

 

심판의 확실성을 피력한 사도 베드로는 이렇게 권면한다: “이 모든 것이 이렇게 풀어지리니 너희가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마땅하냐?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 그 날에 하늘이 불에 타서 풀어지고 물질이 뜨거운 불에 녹아지려니와 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의가 있는 곳인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도다”(베드로후서 3;10-12절). 할렐루야!

 

심판을 언급한 것은 구원하시기 위함입니다. 이미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는 믿음 안에서, 아직 완성되지 구원을 소망하고 기다리면서,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의 삶을 훈련하는 오늘 하루의 삶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마라나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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