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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묵상

[심형권 목사] 예레미야 23:9-22절 묵상

오늘 본문은 거짓 선지자들을 향한 경고의 메시지입니다.

본문

 

오늘 본문은 거짓 선지자들을 향한 경고의 메시지입니다. 9절에 보면, 예레미야는 자신이 받은 하나님의 이 거룩한 메시지로 인해 ‘내 마음이 상했고 내 모든 뼈가 떨렸고, 마치 술에 취한 사람처럼 되었고, 포도주에 잡힌 사람처럼 되었다’고 고백합니다.

 

온전히 하나님의 거룩한 말씀에 압도된 예레미야와, 사람들의 비위를 맞추려고 거짓 예언을 쏟아내는 거짓 선지자들이 대조됩니다. 13절은 사마리아 선지자들이 바알을 의지해 예언했던 ‘사술’을 지적하고, 14절은 예루살렘 선지자들이 간음하고, 소돔과 고모라와 다름이 없는 악행을 저질렀음을 고발하고 있습니다.

 

사마리아 선지자란 북이스라엘의 선지자들을 말합니다. 그런데 예레미야 당시는 이미 북이스라엘이 망하고 난 이후입니다. 이미 사라져버린 북이스라엘 선지자들의 과오를 먼저 언급한 것은 아직도 기회가 남아 있는 남유다의 선지자들에게 ‘북이스라엘 처럼 되지 말라는 경고의 말씀입니다.

 

선지자들의 죄악상은 말로 묘사하기도 어려울 정도로 충격적입니다. 바알의 이름으로 예언하고, 간음을 하고, 악한 자들을 돌이켜야 하는데 방조하고, 무엇보다도 하나님께서 하시지도 않은 말씀을 마치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것처럼 전했습니다.

 

그들은 ‘너희가 평안하리라, 재앙이 너희에게 임하지 아니하리라’(17절)는 평화의 메시지를 전했습니다. 평강 자체가 문제 삼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이 회개 없는 평강인 것이 문제입니다. 17절을 다시 보면, 하나님의 메시지를 들어야 하는 사람들을 ‘하나님을 멸시하는 자들’이고, ‘자기 마음이 완악한 대로 행하는 사람들’이라고 묘사합니다. 인간의 죄성은 본성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거부합니다. 듣고 싶은 말만 듣고 싶어하는 것이 사람의 본성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의 본성을 거스릅니다. 죄악의 본성을 포기해야 구원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은 그냥 듣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전하기도 어려웠고 예레미야가 고통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의 귀에 즐겁도록, 그들의 구미에 맞게 심판 없는 구원, 애통함이 없는 회개를 전하는 거짓 선지자들을 하나님은 책망하십니다. ‘여러분! 괜찮습니다. 다 잘 될 겁니다. 심판은 없어요, 재앙은 임하지 않습니다’라고 외치는 거짓 선지자들에게 하나님이 말씀하십니다.

 

‘보라 여호와의 노여움이 일어나 폭풍과 회오리바람처럼 악인의 머리를 칠 것이라 여호와의 진노가 그 마음에 뜻하는 바를 행하여 이룰 때까지는 그치지 아니하나니 너희가 끝 날에 그것을 완전히 깨닫게 될 것이다’(19절).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그 날, 바벨론 군대가 쳐들어와 예루살렘이 초토화되는 그 날, 우리 주님께서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시기 위해 오시는 바로 그 날, 모두가 깨닫게 될 것입니다. 물이 바다를 덮음 같이 여호와를 인정하는 것이 온 세상에 가득하게 될 것입니다.

 

예수 안 믿으면 지옥 갑니다 그랬더니 그래서 교회 가기가 싫어요 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예수 천당 불신 지옥과 같은 구호는 사람들을 불편하게 하는 미성숙한 교회의 일탈이라고 생각하는 목회자들도 있습니다. 성숙한 믿음을 가진 사람은 좀 더 유연하게 불신자들에게 다가가야 한다고 말합니다. 나의 신앙의 성숙함이 준엄한 하나님의 심판의 메시지를 어디까지 유연하게 바꿀 수 있을지 난감할 따름입니다. 선지서들에 나타나는 그 두려운 심판의 묘사들을 우리의 기준과 상식으로 평강의 메시지로 바꿀 권리가 우리에게 있는지 궁금합니다. 마지막 심판과 지옥불의 분노를 무시한 채 고상하게 앉아 ‘나는 행복합니다’의 반쪽 복음만 들을 처지가 되는지요!

 

16절을 보십시오.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너희에게 예언하는 선지자들의 말을 듣지 말라 그들은 너희들에게 헛된 것을 가르치나니 그들이 말한 묵시는 자기 마음으로 말미암은 것이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온 것이 아니니라.’ 여기에서 ‘헛된 것’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다고 할 때 그 단어에서 파생된 단어입니다. 하나님과 관계없는 말씀은 바람에 사라져 버리는 안개처럼, 그 안에 생명의 역사가 없는 소음에 불과합니다. 우리를 생명으로 이끄는 것이 아니라 사망으로 이끄는 속임수일 뿐입니다.

 

선지자의 사명은 하나님의 말씀을 있는 그대로 전달하는 것입니다. 자기의 이야기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이어야 합니다. 신앙의 길이란 자신이 원하는 길을 가는 것이 아니라, 하늘의 뜻이 이 땅에 이루어지도록 부름 받아 가는 길입니다. 내가 필요해 선택한 길이 아니라, 택함을 받아 따라가는 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자와 그 말씀을 듣는 자들은 모두 하늘의 하나님 앞에 서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지는 것 같이 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해 달라’고 기도합니다. 내 뜻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입니다.

 

우리와 이 땅을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도록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는 이 땅의 나그네 여정 길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마라나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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