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레미야 18:13-23절 묵상 > 말씀 묵상

본문 바로가기

말씀 묵상

[심형권 목사] 예레미야 18:13-23절 묵상

참 선지자와 거짓 선지자를 구별해 주는 지표가 있다면 무엇일까요?

본문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처녀 이스라엘’이라고 부르십니다(13절). 앞의 14장 17절에서도 ‘내 처녀 딸’이라고 부르셨습니다. 그 처녀가 행한 ‘심히 가증한 일’이 뭘까요? 말 안해도 충분히 짐작할 수 있습니다. 다 큰 딸의 일탈을 안타까워하는 아버지의 마음이 느껴집니다.  

 

14절은 그 딸을 향한 아버지의 답답한 마음을 이렇게 표현합니다. ‘레바논’에서 내리는 눈은 당연히 내린 바위에 붙어 있고, 그 눈이 녹은 찬물은 계곡을 따라 흐르는데, 하나님의 백성을 자처하는 이스라엘은 허무한 것에 분향하고 그로 인해 옛길에서 넘어지고 곁길로 간다는 것입니다. 15절에만 ‘길’이라는 단어가 4번이나 나옵니다. 정도에서 벗어나 잘못된 길로 가고 있는 남유다의 현실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 길에는 16절에 있는 대로, 두려움, 지나가는 사람들이 머리를 흔들며 비웃는 영원한 웃음 거리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거기는 17절의 말씀 대로, 하나님께서 등을 돌리셔서 하나님의 얼굴을 볼 수 없는 곳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복을 주시고 그 얼굴을 우리에게 비추사 은혜를 주시며 그 얼굴을 우리에게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시는 분이십니다(민수기 6:24-26절). 그런데 그 하나님께서 그 얼굴을 돌이시고 등을 보이신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그 마음을 돌이키셨다는 뜻입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이 간절한 마음을 전하는 예레미야를 사람들은 죽이려고 계획합니다. 이것은 단순한 위협이 아니라 실제적인 위협이었습니다(38장). 놀라운 것은 그들이 예레미야를 죽이려고 했던 그들 나름의 논리와 이유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들 역시 ‘하나님의 말씀’을 주장합니다. 자기들에게도 ‘제사장의 율법이 있고, 지혜자의 책략이 있고, 선지자들의 말씀이 있다’고 주장합니다.

 

적어도 유다 백성들의 판단으로는 예레미야가 참 선지자일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이 바벨론에게 항복하라고 하실 리가 없다는 것이고, 평강만 있을 것이라고 외친 거짓 선지자들의 거짓 예언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잘못된 열심에 근거해 예레미야를 죽이려고 한 것입니다.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선지자들을 죽이고 네게 파송한 자들을 돌로 치는 자여 암탉이 그 새끼를 날개 아래로 내가 네 자녀를 모으려 한 일이 몇 번이더냐 그러나 너희가 원치 아니하였도다”(마태복음 23:37절).  예루살렘을 향해 탄식하셨던 예수님의 말씀을 생각나게 합니다. 진리의 말씀을 애써 외면하고 싶어하는 우리 안에 깊게 뿌리 내린 죄성이 얼마나 고집스럽고 무서운지요!

 

19-23절은 이 위협의 현실 앞에서 예레미야가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의 내용입니다. ‘여호와여 나를 돌아보사 나와 더불어 다투는 그들의 목소리를 들어 보옵소서!’ 예레미야는 이 상황을 하나님께로 가져 갑니다.

 

참 선지자와 거짓 선지자를 구별해 주는 지표가 있다면 무엇일까요? 누가 끊임없이 하나님을 찾는가 일 것입니다. 예레미야는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문제의 해답을 구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편에 있는지를 잘 알 수 있는 지표가 있다면 뭘까요? 문제 앞에서 하나님을 찾고 있는가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자기 편 만들고, 전화통 붙잡고, 사람을 통해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는지, 아니면 정말 전심으로 기도의 자리를 찾고 있는지…  

 

예레미야의 기도는 두 가지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먼저, 자신이 백성들의 유익을 위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다는 자신의 사명의 자리를 다시 확인합니다. 둘째는 이 말씀을 거부하고 저를 죽이려고 위협하는 저들을 하나님께서 갚아 달라고 합니다. 이것은 저주의 악담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이루어지이다! 입니다. 구원과 심판은 변할 수 없는 하나님의 성품을 반영하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개인적 감정을 표출하는 것이 아니라, 악을 멸하시는 하나님의 공의에 호소하는 믿음의 표현으로 우리는 이해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반드시 이루어지는 것처럼, 하나님의 공의도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신앙의 고백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구원을 얻고 하나님의 얼굴 빛을 돌리는 길은 자신의 완고함을 꺾고 돌이키는 길 뿐입니다. 그리고 이 진리를 가감 없이 전하고 선포하는 것이 우리의 사명이고 우리가 아직 이 땅에 있는 이유 임을 믿습니다.

 

하나님의 인내가 끝나는 그 날이 오기 전에 성도의 사명, 교회의 사명 기억하고 구원과 심판의 복음을 전하고 그 안에서 행하는 이 땅의 나그네 여정 길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마라나타!!

0
로그인 후 추천 또는 비추천하실 수 있습니다.

댓글목록0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게시판 전체검색
다크모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