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형권 목사] 예레미야 17:19-27절 묵상
갑자기 ‘안식일 준수’에 대한 메시지가 전해집니다.

본문
갑자기 ‘안식일 준수’에 대한 메시지가 전해집니다. 안식일을 지키면 회복의 은혜를 경험하게 되겠지만, 만약 순종하지 않는다면 예루살렘 산성은 불에 타 무너지게 될 것이라는 메시지입니다. 유다의 불신앙과 불순종의 중심에는 ‘안식일’을 뭉겨버린 죄악이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안식일 규례의 근거는 두 가지입니다. 출애굽기의 십계명에서는 하나님께서 제7일에 쉬셨다는 사실에 근거해 안식일을 명하셨고, 신명기의 십계명에는 이스라엘을 이집트에서 구원하신 사실에 근거해서 안식일을 지키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니까 안식일은 창조주 하나님과 구원자 하나님을 기억하고 기념하는 날입니다. 하나님께서 제7일에 쉬셨다는 것은 더 이상 손 댈 것이 아무 것도 없는 완벽한 창조였음을 의미합니다. 또 아담의 타락 이후에는 하나님의 구원이 전적으로 하나님의 힘과 능력으로 이루어진 것임을 기념하는 것입니다.
아담의 타락 이후로 ‘일’은 사람에게 내려진 저주의 일부입니다. 흘리지 않아도 될 땀을 흘리며 땅과 싸워야 먹을 수 있고 결국은 흙으로 돌아가야 하는 인생임을 배우는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인간을 그렇게 죽도록 버려두지 않았습니다. 창세 전에 삼위 하나님의 경륜 안에서 택하신 자기 백성들을 구원하시는 계획이 있으셨습니다. 그리고 그 구원은 마치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집트에서 해방된 것처럼, 죄인된 우리를 죄와 사망의 권세에서 자유하게 하심으로 완성하셨습니다. 그것은 전적인 하나님의 능력과 힘으로 이루어진 완벽한 하나님의 작품입니다.
그런데 남유다 백성들은 이 신앙을 고백해야 하는 안식일에 조차 자신들의 일에 바빴고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을 예배하기 위해 출입하는 예루살렘의 성문에는 감사의 제물과 희생의 제물보다 자신들의 이익과 욕심과 계획을 이루기 위한 것들로 가득 찼습니다. ‘짐’이라고 표현한 것은 그것들이 그들에게 평강을 주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어깨를 짓누르는 부담이고 불안이고 걱정과 염려라는 것을 말해줍니다. 하나님 안에서 누리는 평강과 기쁨과는 상관이 없는 자기 이익, 자기 영광을 위한 무거운 짐일 뿐이었던 것입니다.
솔로몬은 시편 127편 1절에서 이렇게 가르쳐 줍니다: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수꾼의 수고가 헛되도다.’ 남들보다 일찍 일어나고 늦게 누우며 수고해서 얻은 ‘수고의 떡’이지만 참된 평강을 주지 못한다는 고백입니다.
자기 스스로 인생을 새롭게 할 수 있는 창조주가 되고, 자기 스스로 삶을 구원할 수 있는 구원자가 될 수 있을 것 같지만, 하나님의 간섭하심이 없는 인생의 소유는 헛된 것입니다. 세상을 살면서 세상의 것에만 취해서 사느라 안식을 누리지 못하고, 죽어서도 안식을 누리지 못하는 인생이 된다면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잠시의 영화와 즐거움이 영원한 것을 놓치게 했기 때문입니다.
안식일은 이스라엘의 신앙 고백의 중심에 있는 참 신앙 여부를 가늠해 주는 시금석이었습니다. 안식일 규례를 제대로 지킨다는 것은 여호와 신앙으로 돌아오는 것을 의미했습니다. 그렇게 하면 왕들의 자리는 견고해지고 예루살렘 성은 견고히 서게 될 것이라고 약속하셨습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의 성전으로 와서 번제와 희생과 소제와 유향과 감사 제물로 제사를 드리는 예배의 회복도 약속하셨습니다.
하지만 끝까지 뻗대고 순종하지 않으면 성문에 불을 놓아 예루살렘 성이 불에 삼켜지게 할 것이라는 경고의 말씀도 잊지 않으셨습니다. 27절에 ‘궁전’으로 번역된 히브리어는 견고한 ‘성채’를 의미하는 단어입니다. 아마도 무너지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평강만 있을 것이라는 거짓 선지자들의 메시지를 꽉 붙잡고 아무 일도 없을 것이라고 자만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들의 교만과 불순종은 결국 바벨론의 침공을 통해 여지없이 무너졌습니다. 하나님의 경고의 말씀대로 된 것입니다.
말씀을 정리하자.
예수님께서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고 하셨을 때, 이 말씀은 하나님이 약속하신 안식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음을 선언하시는 것입니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라’고 하셨을 때, 그것은 온유와 겸손의 멍에만이 참 자유와 평강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죄인 된 우리는 우리의 일에 빠져 참 평강을 놓치고 허둥댈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내게 배우라’고 하신 것입니다. 우리의 믿음, 경건은 어느 날 갑자기 생기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걸어가신 길을 통해 배워서 얻는 것입니다.
걱정과 염려가 있습니까? 이 모든 것들도 하나님의 섭리 안에 있음을 믿읍시다. 성도는 일이 아니라 안식에 의해 지배를 받는 사람들입니다. 오직 우리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모든 지각에 뛰어난 평강과 안식의 비밀을 배워가는 오늘 하루의 여정 길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마라나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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