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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묵상

[심형권 목사] 예레미야 17:1-18절 묵상

유다 백성들의 죄악상이 계속해서 드러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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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다 백성들의 죄악상이 계속해서 드러납니다. 그 죄악의 기록들이 마치 금강석 끝 철필로 쓰듯이 그들의 ‘마음 판’과 ‘제단 뿔’에 새겨졌다고 합니다. 1절의 ‘기록되다’, ‘새겨지다’는 수동태입니다. 하나님께서 기록하시고 새기셨다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죄를 잊지 않고 기억하신다는 강력한 표현입니다.

 

‘마음’은 속 사람을 상징하고, 번제단의 뿔을 잡는 것은 용서와 보호를 요청하는 행위였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말씀으로 가득 차야 할 마음이 죄악으로 가득차고, 용서의 상징인 제단의 뿔은 그들의 죄악으로 새겨져 있을 만큼 남유다는 죄악에 물들어 있었습니다.

 

2절에, ‘그들의 자녀가 높은 언덕 위 푸른 나무 곁에 있는 그 제단들과 아세라들을 생각하도다’는 말씀은 자녀들을 신앙으로 키우지 못한 부모들을 질책하는 의미로 해석이 되지만, 다른 번역은 유다 백성들이 자기들의 자녀들을 끔찍이 생각하듯이 우상들을 끔찍이 생각한다는 뜻으로 이해합니다.  

 

이러한 유다의 죄는 하나님의 노를 맹렬하게 하여 ‘영원히 타는 불’을 일으켰습니다(4절). 꺼지지 않고 지속되는 영원히 타는 불은 지옥의 불을 생각나게 합니다. 바벨론을 통해 성취될 하나님의 징계에 대한 생생한 경고의 말씀입니다.

 

그런데 유다의 죄를 경고하면서 예레미야는 먼저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고백합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영화로우신 보좌, 시작부터 높이 계시는 분, 우리의 성소, 이스라엘의 소망이 되시는 분이십니다(12-13절). 이런 하나님을 버린다는 것은 정말로 어리석은 선택입니다. 그런데 그 어리석은 짓을 남유다 백성들이 행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제 그들은 ‘흙에 기록되는’ 저주를 받을 것입니다. 흙에 기록된다는 것은 악인의 소멸을 말합니다: “영화로우신 보좌여 시작부터 높이 계시며 우리의 성소이시며 이스라엘의 소망이신 여호와여 무릇 주를 버리는 자는 다 수치를 당할 것이라 무릇 여호와를 떠나는 자는 흙에 기록이 되오리니 이는 생수의 근원이신 여호와를 버림이니이다.”

 

아담의 범죄 이후로 세상은 부패하고 썩어져 가는 저주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그 모든 만물보다 더 부패하고 썩어져 가는 것이 사람의 마음입니다(9절). 그리고 그 마음은 자신의 악함을 깊게 숨길 수도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열 길 물 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의 마음은 모른다’는 속담이 괜히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 말은 유다 백성들이 대놓고 죄를 지은 것이 아니었음을 암시합니다. 경건을 가장한 마음 속 깊은 곳에 꽁꽁 숨겨진 죄악들도 있었다는 뜻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 중심을 보시고 아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심장을 살피며 폐부를 시험하고 각각 그의 행위와 그의 행실대로 보응하시는 분’이십니다. “사람의 행위가 자기 보기에는 모두 깨끗하여도 여호와는 심령을 감찰하신다’(잠언 16:2절)고 지혜자는 말합니다. 남의 알을 훔쳐서 자기 알인 것 처럼 품는 자고새처럼 자신의 죄를 정당화하고, 속이고 합리화하고, 의인인 것처럼 행동해도 하나님은 그 숨은 동기를 알고 계신다고 예레미야는 지적합니다. 사도 바울은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업신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갈라디아서 6:7절)고 경계합니다.

 

여호와를 의지하고 의뢰하는 사람은 물가에 심긴 나무처럼 그 앞이 청청하고 때마다 열매를 맺지만, 사람을 믿고 육신으로 그의 힘을 삼고 마음이 여호와에게서 떠난 그 사람은 저주를 받을 것입니다(5-8절). 부패한 우리의 마음을 말씀으로 비추어 살피지 않으면 우리도 스스로 속이는 자가 되는 유혹에 넘어질 수 있음을 기억합시다. 주의 말씀이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 되는 삶이 되기를 소망하고 기도합니다(시편 119:105절).

 

예레미야 역시 백성들이 듣기 싫어하는 메시지를 전하면서 감당하기 힘든 조롱과 수치(15절)를 경험했습니다. 하지만 자신의 사명을 포기하지 않았고 물러서지 않고 주를 따랐습니다(16절). 거짓 경건으로 여호와를 버린 유다 백성들과 시련 가운데도 주의 말씀에 붙어 있는 예레미야가 대조됩니다. 하나님의 뜻을 저버리는 것이 진짜 수치이고, 거짓 메시지에 속아 심판 없는 평강을 꿈 꾸는 것이 어리석은 일이라는 것을 깨닫습니다.  

 

우리의 구원은 받을 만한 자들에게 주어지는 보상이 아니라, 당연히 받아야 할 심판이 면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은혜이고 감사입니다. 이것이 구원을 말하려면 심판을 말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따라서 불편해도 전해야 하고 선포해야 합니다. 이미 구원을 받은 우리 모두에게 주어진 사명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모두에게 이 마음을 주시고, 영혼에 대한 갈급 함을 주시기를 기도하고 소망합니다.

마라나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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