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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묵상

[심형권 목사] 예레미야 13:15-27절 묵상

하나님의 인내에는 끝이 있습니다.

본문

 

오래 참으신다는 것은 영원히 참지 않으신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은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공의를 양보하지 않으시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 16절이 그 사실을 잘 보여줍니다. “그가 어둠을 일으키기 전, 너희 발이 어두운 산에 거치기 전, 너희 바라는 빛이 사망의 그늘로 변하여 침침한 어둠이 되게 하시기 전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이 구절을 지배하는 이미지는 ‘어둠’입니다. 서두에 ‘어둠을 일으키다’는 말은 히브리어로 한 단어인데, 창세기 1장 2절에 ‘흑암이 깊은 위에 있고’라고 할 때 그 ‘흑암’이라는 단어의 동사형입니다.  

 

하나님의 창조는 흑암이 빛으로 바뀌는 역사로 시작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빛에서 다시 흑암의 상태로 돌리는 것이 심판임을 암시해 줍니다. 그러니까 이 오기 전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고 하십니다. 15절에는 ‘귀를 기울여 듣고 교만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아직 시간이 있고 기회가 있을 때, 돌이켜야 합니다. 그런데 돌이키는 것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는 말로 표현한 것이 흥미롭습니다.

 

히브리어로 ‘영광’은 ‘무겁다’는 단어에서 왔습니다. 영광은 그 존재의 무거움입니다. 하나님께 영광은 하나님의 그 존재 앞에 압도되는 것, 하나님의 존재의 무거움이 우리의 어깨를 누르고 우리의 모든 의지와 생각을 제압하시는 것을 의미합니다. 18절에 “너는 왕과 왕후에게 전하기를 스스로 낮추어 앉으라 관 곧 영광의 면류관이 내려졌다 하라”는 말씀은 하나님의 영광과 사람의 영광을 잘 대조해 줍니다. 자신이 가진 면류관의 무게를 내려 놓고 그 면류관을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다.  

 

하지만 남유다는 돌이키지 않았다. 25절의 ‘너희가 나를 잊어버리고 거짓을 신뢰했다’는 말씀이나 ‘음란과 음행과 가증한 것’을 행했다’는 말씀은 그들의 우상 숭배를 질책하는 말씀입니다. 바알 종교의 신전에는 여성 창기들이 상주했고 신전에서의 성적 행위는 땅의 풍요를 기원하는 성스러운 의식으로 여겼습니다. 세상의 물욕을 위해 신앙을 빙자한 우상숭배를 지적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는 말씀은 이 모든 교만과 우상 숭배의 행위들을 버리고 돌아오라는 말씀입니다.  세상에 압도되어 거기에 눌려 살지 말고, 그 헛된 것들에 마음을 빼앗기지 말고, 하나님께 압도되고 하나님 앞에서 살아야 합니다.

 

그런데 이게 참 어렵습니다. 23절의 말씀대로, 사람이 자기 피부 색을 바꿀 수 없고, 표범이 그 반점을 변하게 할 수 없듯이, 사람의 죄성은 쉽게 바뀌지 않습니다.

 

이 말씀은 우리 스스로, 우리의 힘과 의지로 하나님께 돌아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우리에게 선한 본성이 남아 있기는 하지만, 우리 스스로 죄성을 극복할 수는 없다는 뜻입니다.  

 

구원은 우리가 할 수 없는 것을 하나님께서 친히 행하심을 통해서 얻은 은혜를 의미합니다. 그리스도 예수의 대속적 죽음으로 우리의 죄의 문제를 해결하셨고, 성령님의 조명과 인도하심을 통해 하나님을 닮아가게 하십니다. 죄악 된 이 세상에서 천국 백성의 삶을 살도록 격려하시고 가르쳐 주십니다.

 

‘인간의 전적인 타락’은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로 인해 해결되었습니다. 그 은혜의 손길, 복음의 초청을 인정하고 받아들이기만 하면 됩니다. 그리고 그 인도하심을 따라 순종하는 훈련을 하는 것이 성도 된 우리의 이 땅에서의 삶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우리의 죄성보다 훨씬 크십니다. 오늘도 그 은혜 때문에 삽니다. 또 그 은혜로 살 것입니다.  은혜가 삶의 이유가 되는 이 땅의 나그네 여정길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마라나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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