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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묵상

[심형권 목사] 민수기 7:12-89절 묵상

아침마다 성경을 펼 때 우리는 거룩하신 하나님의 임재 앞에 서는 것입니다.

본문

 

어제 본문에 이어, 열 두 지파의 지휘관들이 각 지파들을 대표해서 하루에 한 사람씩 12 일 동안 예물을 드리는 내용입니다.

 

지파의 이름 만 다를 뿐, 드리는 예물의 종류와 분량은 똑 같아서 같은 내용이 지루할 정도로 83절까지 반복됩니다. 첫째 날에 봉헌한 레위 지파의 봉헌물의 내용을 소개한 후에, ‘나머지 지파의 지휘관들도 똑같이 제단에 봉헌물을 드렸더라’라고 끝내도 되었을 텐데, 한 글자도 틀리지 않는 똑 같은 내용을 열 한 번이나 반복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본문을 읽고 듣는 독자의 입장에서는 지루할지 몰라도 이름이 불리는 당사자들의 입장에서는 그렇지 않았을 것입니다. 졸업식 때 졸업장을 한 사람만 대표로 주고 나머지는 ‘이하 동문’이라고 하는 것과, 한 사람 한 사람의 이름을 불러 주고 격려해주는 것과는 그 당사자의 입장에서는 의미가 다를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머리카락을 세시는 하나님은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의 헌신과 수고를 잊지 않고 기억하시는 분이십니다. 영원하신 하나님은 제한된 시간을 쪼개서 우리를 만나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 한 사람 한사람을 영원이라는 시간 속에서 만나실 수 있는 분이십니다. 다른 사람을 만나기 위해 급하게 나를 떠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우리 모두를 동시에 영원토록 만나 주실 수 있는 ‘영원하신’ 하나님, ‘무소부재’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영원이라는 시간 속에서 나를 아시고 기억하시는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이름이 불려지는 지파와 지휘관의 순서는 앞에서 언급되었던 성막을 중심으로 진을 치고 행진을 할 때 호명된 순서와 같습니다: 유다-잇사갈-스불론, 르우벤-시므온-갓, 에브라임-므낫세- 베냐민, 그리고 단-아셀-납달리 지파의 순입니다(2:3-31절).

 

이제 이스라엘은 이 순서에 따라 질서 있게 움직여야 합니다. 누가 먼저 불렸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모두가 질서를 따라 차례대로 불리었다는 사실이 중요합니다. 그래서 12 라는 수가 강조됩니다. 은 쟁반이 열 둘, 은 바리가 열 둘, 금 그릇이 열 둘, 수 송아지 열 두 마리, 숫양이 열 두 마리, 일 년 된 어린 숫양 열 두 마리, 숫염소 열 두 마리입니다. 그리고 화목제의 봉헌물들은 더 많았는데 이들도 모두 열 둘의 배수인 스물 넷, 육십 등으로 표현됩니다. 열 둘이 모두 하나 같이, 하나도 빠짐이 없이 온전히 하나님께 드려졌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가 한 사람도 빠짐이 없이 모두가 한 마음으로 동일하게 하나님께 ‘산 제물’(로마서 12:1-2절)로 드려지는 건강한 ‘몸’이기를 소망합니다.

 

봉헌의 예식이 끝난 후 모세가 성막으로 들어가자 하나님께서 ‘증거궤 위 속죄소 위의 두 그룹 (=하나님을 보좌하는 천사들을 지칭하는 히브리어 ‘커룹’을 그대로 음역한 발음) 사이에서 말씀하시는 소리를 듣습니다(89절).

 

증거궤의 덮개는 하나님을 대면하면 죽을 수밖에 없는 죄인된 우리를 보호하는 역할을 합니다.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법궤의 영광을 가려줌으로써 죄인들의 생명을 보존해 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말씀하시는 소리만 들을 수 있었습니다. 그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기 전까지는 말입니다.

 

사도 요한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소개합니다. 그 분의 말씀안에서 ‘하나님의 독생자의 영광과, 은혜와 진리가 충만한 것을 보았다고 증언합니다(요한복음 1:14절). 예수님께서도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다’(요한복음 14:9절)고 말씀하셨습니다.

 

구약의 하나님은 정죄하시는 무서운 하나님이고, 신약의 하나님은 사랑과 희생으로 우리를 구원하시는 사랑의 하나님이라는 오해가 있습니다. 하지만 성자 하나님을 보내신 분이 바로 성부 하나님이십니다. 아버지와 아들이 하나라면 아들의 마음이 곧 아버지의 마음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사랑이신 것입니다(요한일서 4:8절).

 

죄인된 우리의 작은 헌신과 감사의 고백들이 하나님께 드려질 수 있는 이유는 이 땅에 사람으로 오셔서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독생자, 그리스도 예수님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의 말씀은 기록된 성경을 통해 ‘확증’되었고 우리는 그 성경을 통해 하나님의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은혜를 입었습니다.

 

아침마다 성경을 펼 때 우리는 거룩하신 하나님의 임재 앞에 서는 것이고, 법궤의 덮개를 그의 희생의 피로 여신 그리스도의 십자가 은혜와 그의 영이신 성령의 인도하심을 통해 하나님의 소리를 더 분명하고 선명하게 듣는 특권을 얻었습니다. 이제 우리는 하나님 앞에 온전히 드려진 산 제물이고, 이를 한 사람 한 사람 일일이 기억하시고 만나주시는 다함이 없는 하나님과의 교제를 누리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알아주시면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묵상할 수 있는 한 두렵지 않습니다. 가는 길이 분명하고 푯대가 선명합니다. 헛된 것에 마음을 빼앗기지 않고 부르심의 사명에 순종하고 감사할 것입니다.

 

하루의 삶의 무게가 이 세상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로 쌓여 가는 복된 나그네 여정 길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마라나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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