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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묵상

[심형권 목사] 마태복음 7:1-12절 묵상

비판하는 것과 분별하는 것은 다른 이야기입니다.

본문

 

"비판을 받지 아니하려면 비판하지 말라!" 헬라어 원본에는 ‘비판하지 말라!’가 먼저 나옵니다. ‘비판하지 말아라! 그러면 너희들도 비판을 받지 않을 것이다.’ 누구에게 비판을 받지 않는다는 말일까요? 이 구절은 그 주체가 드러나지 않는 ‘신적 수동태’(크리데테)로, 그 주체는 ‘하나님’입니다. 하나님께 비판을 받지 않으려면 함부로 남을 비판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나도 똑 같이 판단을 받을 자리에 설 수 있는 자이고, 우리 모두는 하나님 앞에서 현재 진행형이기 때문입니다.

 

물이 없다고 불평하는 이스라엘로 인해 화가 난 모세가 ‘반역한 너희여’(민수기 20:10절)라고 외치며 반석을 두 번 때렸습니다. 시편 106:33절은 모세의 이 말을 ‘그의 입술로 망령되이 말한 것’이라고 분명하게 지적합니다. 그리고 그로 인해 하나님께 판단을 받습니다: ‘네가 나를 믿지 않았고, 나의 거룩함을 드러내지 못했다. 고로 너는 내가 이 회중을 드릴 그 땅에 함께 가지 못할 것이다.’

 

모세가 구스(이디오피아) 여인을 취한 적이 있습니다. 그 때 미리암이 모세를 비판합니다(민수기 12:1절). 하나님께서 미리암을 판단하시고 문둥병에 걸리게 하십니다. 왜 하필 문둥병이었을까요? 문둥병은 부정하게 되는 병입니다. 미리암을 향해 ‘너는 깨끗하냐?’ 라고 물으시는 하나님의 음성이 들리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 소리는 간음한 여인을 돌로 쳐 죽이려고 끌고 온 무리들을 향해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치라’(요한복음 8:7절)고 하시며 그들을 판결하시는 예수님을 생각나게 합니다.

 

‘먼저’와 ‘그 후에야’가 구분됩니다. 남을 비판하기 전에 ‘먼저’ 나를 돌아보고, 상대방의 연약함 속에서 먼저 자신의 부족함을 볼 줄 아는 겸손을 요구하시는 것입니다. 먼저 나 자신을 돌아볼 줄 아는 겸손함을 배우기를 원합니다.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고린도전서 10:12절)는 말씀을 마음 깊이 새깁시다.

 

그렇다고 영적 분별력까지 포기하라는 말씀은 아닙니다. 비판하는 것과 분별하는 것은 다른 이야기이기 때문입니다. ‘거룩한 것을 개에게 주지 말고 진주를 돼지에게 주지 말라’(6절)는 말씀은 정말로 가치 있고 소중한 것을 분별할 줄 아는 지혜와 관련이 있습니다. 다이아 반지를 강아지에게 끼워주지 않습니다. 진주 목거리를 돼지에게 걸어주지 않습니다. 비판은 조심하고 피해야 하지만 영적 분별력과 지혜는 천국 백성에게 절대적으로 필요한 덕목이기 때문입니다(요한일서 4:1절).

 

산상수훈에 나타나는 천국의 가치관은 이 땅의 가치관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가히 혁명적인 것입니다. 따라서 세상이 두 팔 벌려 환영하지 않는 것이 당연합니다. 진리는 모두를 위한 것이 아니라 그 진리를 따르는 자들의 것입니다. 성도는 그 진리 안에서 참 자유를 얻고(요한복음 8:31-32절), 그 진리 안에서 생명의 길에 이르게 될 것입니다(요한복음 14:6절).

 

이어서 구하고, 찾고, 두두리라, 그러면 구한 것을 받을 것이고, 찾게 될 것이고, 열릴 것이라는 말씀이 이어집니다. 앞의 말씀의 논리를 잘 따라 왔다면 이 말씀은 내가 원하는 아무 것이나 구하는 대로 주신다는 말씀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5장과 6장에 이르기까지 세상과 구별되는 하나님 나라의 윤리를 말씀하신 예수님께서 갑자기 아무 것이나 원하는 것을 구하라고 하실 리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는 말씀으로 요약되는 천국의 가치관, 선과 악을 분별할 줄 아는 분별력을 구하라는 것입니다. 구할 뿐만 아니라 지속적으로 찾아야 하고, 열정적으로 두드려야 합니다. 그러면 반드시 ‘좋은 것’(11절)으로 주신다는 약속의 말씀입니다. 누가복음에는 이 ‘좋은 것’을 ‘성령’으로 해석해줍니다: “하물며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누가복음 11:13절). 성도는 성령을 받아 성령을 따라 사는 자들입니다. 삶의 주체가 바뀌었다는 뜻입니다. 결국 우리가 하나님께 구하고 갈망해야 하는 것은 신앙을 빙자해 내가 원하는 것을 얻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따라 순종하고 섬기는 삶을 사는 것임을 깨닫습니다. 그런 삶을 위해 성령을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 중심,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게 해달라고 구하고, 찾고 두드립시다.

 

예수님은 이 교훈을 이렇게 마무리하십니다.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12절). 대접을 받기 위해 대접하라는 뜻이 아닙니다. 내가 이만큼 해 주었으니까 너도 이만큼 해 주어야 한다는 것은 세상의 논리입니다. 예수님은 ‘억지로 오리를 가자고 하면 십리를 동행하고, 구하는 자에게는 주고 거절하지 말라’(5:41-42절)고 가르치셨습니다.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남을 대접하라는 말씀은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말씀과 같습니다. 결국 상대방의 입장을 먼저 생각하라는 뜻입니다. 상대방을 나처럼 생각하면 많은 문제들이 해결됩니다.

 

성도는 성령의 사람들입니다. 성령을 따라 행한다는 것은 하나님 앞에서 나의 입장을 내려놓는 것이고, 나보다 남을 먼저 생각하는 것입니다. 죄성과 욕심으로 가득 찬 우리에게 쉽지 않은 요구처럼 보입니다. 그래서 성령을 구하고 성령의 인도를 받는 길을 찾아야 합니다. 구하는 자에게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응답의 은혜가 우리 모두에게 있기를 소망하고 기도합니다.

마라나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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