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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묵상

[심형권 목사] 마태복음 9:14-26절 묵상

이 복음을 담으려면 새 마음이 필요합니다.

본문

 

.요한의 제자들이 예수님께 와서 왜 그의 제자들은 금식하지 않는 지 묻습니다. ‘금식’은 구약 시대부터 이스라엘의 경건한 습관이었고(사무엘상 7:6; 스가랴 7:5; 8:19 등), 예수님 당시에도 유대 공동체 안의 주류였던 바리새인들은 물론이고(누가복음 18:12절) 비주류 그룹이었던 세례 요한 공동체의 삶의 일부였습니다.  

 

금식하는 요한의 제자들과 유대 공동체가 금식하지 않은 예수 공동체와 대조를 이룹니다. 한 쪽은 경건하게 금식을 하고 있고, 다른 한 쪽은 웃고 즐거워하는 그림입니다. 11장 19절의 예수님의 말씀이 이 상황을 잘 설명해 줍니다: “인자가 와서 먹고 마시매 너희들이 말하기를, 보라 먹기를 탐하고 포도주를 즐기는 사람이요 세리와 죄인들의 친구로다.”

 

40일을 연이어 금식하셨던 예수님입니다. 금식을 피하시는 것이 아니라 금식의 때를 말씀하십니다. 지금은 신랑과 함께 있는 혼인 잔치의 때이기에 즐거워해야 할 때이고, 곧 신랑을 빼앗길 때가 올 터인데 그 때 금식해도 늦지 않다는 것입니다(15절).

 

이스라엘이 금식해야 했던 모든 이유를 대신 지시고 광야로 가셔서 40일을 금식하셨던 예수님은, 마귀의 시험을 이기시고 천국이 가까이 왔음을 선포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오심으로 하나님 나라가 이 땅에 임하기 시작했습니다. 죄의 사슬에 묶여 종 노릇하던 자기 백성들을 신부로 맞이하기 위해 신랑이신 주님께서 오신 것입니다. 그러니 분명 잔칫날이고, 잔칫날에 금식은 어울리지 않습니다. 그 어느 때보다 풍요롭고 넉넉하고 즐겁고 기쁜 날입니다. 귀신이 쫓겨 가고, 열병이 물러가고, 아픈 자들이 치유의 은혜를 맛보고 있습니다. 따라서 금식의 때가 아니라 축제의 때임을 보이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곧 금식해야 할 때가 올 것입니다. 그 신랑을 빼앗길 때, 예수님의 십자가 고난과 죽음의 때입니다. 그 때는 금식하라고 하십니다.

 

그러면 지금은 금식의 때일까요? 축제의 때일까요? 우리는 지금 ‘이미’ 도래한 하나님의 나라의 통치를 받고 살지만, ‘아직’ 온전히 누리고 있지는 못합니다. 그래서 완전한 구원의 그 날까지 우리의 죄성과 싸우고 주의 뜻을 구하고 주의 일을 하기 위한 금식이 필요합니다(사도행전 10:30; 13:2-3절). 하지만 근본적으로 이 시대는 사망의 권세를 이기신 부활 이후의 축제의 시대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받았고 또 전해야 하는 기쁜 소식, 복음의 내용입니다.

 

이 복음을 담으려면 새 마음이 필요합니다. 옛 사람의 가치관과 생각을 포기하고 천국 백성의 가치관으로 채워야 합니다. 이것이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고 하신 말씀의 의미입니다.

 

이 말씀을 하실 때 한 관리가 예수님께 죽은 자기의 딸을 살려 달라고 간청합니다. 그의 집으로 가는 길에 12 년 동안 혈루병을 앓던 한 여인이 고침을 받았고, 죽었던 그 아이는 살아났습니다. 12년 동안의 질병의 고통이 기쁨으로 변했고, 초상집이 잔치집으로 변했습니다. 우리 인생의 치유자, 구원자가 오셨기 때문입니다.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요한복음 10:10절). 예수 안에 생명이 있고 풍성한 삶이 있습니다. 이것이 어두움을 빛으로 바꾸는 복음의 능력이고 힘입니다. 예수의 십자가와 부활이 가져다 준 이 놀라운 은혜가 오늘을 이기게 하는 힘이 되기를 소망하고 기도합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할렐루야! 마라나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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