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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묵상

[심형권 목사] 마태복음 14:1-21절 묵상

오병이어의 기적은 새 시대의 은혜가 무엇인지를 보여주시는 강력한 그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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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에 대한 소문을 들은 헤롯 왕은 세례 요한이 다시 살아난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1-2절). 이 소식을 들으신 예수님께서 고향을 떠나 빈 들로 가셨고(13절), 그 곳에서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 명을 먹이신 오병이어의 기적을 행하신 이야기입니다.

 

세례 요한의 죽음은 구약의 시대가 상징하는 ‘옛 시대’가 완전히 끝났음을 보여주는 구속사적 의미가 있습니다. 율법과 선지자의 끝 시대의 마지막 선지자(마태복음 11:11절)였던 요한의 죽음으로 예수의 복음의 소식이 가지고 온 ‘새 시대’가 열리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인지 요한의 죽음에 대해 ‘안타깝다’거나 ‘아쉽다’거나 일체의 말씀을 하지 않으셨습니다. 우리가 기억하는 요한에 대한 말씀은 ‘여자가 나은 자 중에 가장 큰 자’이지만 ‘하나님 나라에선 가장 작은 자라도 그보다 크다’(11:11절)는 말씀입니다. 구속사의 순서로 본다면 옛 시대의 마지막 선지자이기에 새 시대의 우리들 보다 뒤에 있지만, 요한은 결코 작은 자가 아닙니다. 그의 짧은 인생, 불의하게 당한 죽음 앞에서 자신의 사명을 온전히 감당한 자이기 때문입니다.

 

오병이어의 기적은 새 시대의 은혜가 무엇인지를 보여주시는 강력한 그림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다함이 없고 풍성한 은혜를 보여줍니다. 무에서 유를 창조하신 하나님께 오병이어의 역사는 기적조차 될 수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원하셨고(16절) 말씀하신 대로 역사는 일어났습니다. 우리에게 얼마나 많은 자원이 있느냐가 중요하지 않습니다. 우리를 먹이시고 살리시는 능력은 오직 하나님께 있습니다.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요한복음 10:10절)는 말씀처럼, 근근이 필요를 맞추며 생존하는 그런 인생이 아니라 배불리 먹고도 열 두 광주리가 남을 만큼의 다함이 없는 풍성한 삶입니다.

 

신앙의 삶이란 하나님의 도움으로 내가 크고 내가 높아지는 것이 아니라, 이미 지극히 높으시고 능하신 하나님의 그늘 아래에서 그 은혜를 누리고 맛보며 사는 것입니다. 내가 역사의 주인공이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인이신 역사의 한 부분이 되는 것입니다.  

 

오병이어의 기적을 통해 예수님은 자신이 ‘불쌍한’(14절) 우리 인생을 소성케 하는 생명의 떡이심을 보이셨습니다. 그 분 안에서 참된 안식과 영혼의 포만감과 부족함이 없는 풍성한 삶이 있음을 드러내셨습니다. 떡 다섯 개, 물고기 두 마리에 초점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오천 명의 필요를 채우시고 만족케 하신 예수님의 능력, 하나님 나라의 풍성함이 이 기적이 가르쳐 주는 교훈입니다.

 

예수 안에 참 기쁨과 만족이 있습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모든 짐들이 벗겨지는 안식과 평강이 있습니다. 잠깐 동안의 미봉책이 아니라 영원까지 지속되는 풍성한 삶입니다. 믿음 안에 있다고 하면서 세상의 걱정과 염려, 불평과 원망의 마음으로 살지는 않는지요?

그리스도 안에서의 풍성한 삶, 감사와 찬양이 함께 하는 삶을 누리기를 소망하고 축복합니다.

마라나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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