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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묵상

[심형권 목사] 마태복음 19:1-12절 묵상

가정은 사람되라고 주신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본문

 

‘사람’은 ‘남자’와 ‘여자’입니다. 하나님께서 본래 그렇게 창조하셨습니다(4절). 남자는 여자가 될 수 없고, 여자는 남자가 될 수 없습니다. 남자와 남자, 여자와 여자만으로는 온전한 ‘사람’이 아닙니다. 남자와 여자, 이 둘이 함께 하나님이 의도하신 ‘사람’입니다.

 

결혼은 이 사실을 고백하고 확인하는 하나님께서 제정하신 ‘창조 규례’입니다. “이러므로 사람이 부모를 떠나서 아내와 합하여 그 둘이 한 몸이 될지니라”(5절)고 할 때, ‘사람’은 히브리어로 남자를 뜻하는 ‘이쉬’이고, ‘아내’는 여자를 뜻하는 ‘이솨’입니다. 그러므로 결혼이란 한 남자와 한 여자가 만나 한 몸이 되는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언약의 규례입니다. 따라서 사람의 기준으로 결혼을 정의해서는 안 되고, 또 쉽게 나눌 수도 없습니다.

 

그러면 왜 모세의 율법에 이혼을 허락했느냐(신명기 24:1-4)고 묻는 바리새인들에게 그것은 ‘너희 마음의 완악함 때문’이라고 대답하십니다. 남성 중심의 사회였던 당시의 문화 속에서 쉽게 여자를 버리고 대하는 완악한 마음을 아시고,정말로 가정의 거룩함을 깨뜨린 ‘음행’(9절)과 같이 ‘수치스러운 것’(신명기 24:1절)이 발견되었을 때로 한정하신 것입니다. 이혼을 정당시하는 것이 아니라, 최소한의 기준을 정해주신 것입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은 ‘수치스러운 것’에 자신들이 원하는 온갖 이유를 붙여 이혼의 근거로 삼았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수치스러운 것’을 ‘음행과 간음’으로 한정하십니다(9절). 음행한 이유 외에 아내를 버리는 것은 또 다른 음행이고 간음이라는 것입니다.

 

음행의 경우에만 이혼할 수 있다고 율법이 허용한 것은 ‘그럴 경우 이혼하라’는 의미라기 보다는 가능한 ‘이혼하지 말라’는 결혼의 신성함을 가르쳐 주는 말씀입니다. 마음대로 이유를 붙여 이혼하고 다른 여자에게 가려는 ‘마음의 완악함’(8절) 때문에 최소한의 한계를 정한 것입니다. 물론 속아서 한 결혼도 있고, 정말 하루라도 빨리 헤어지는 것이 서로에게 유익이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하지만 언제든지 헤어질 수 있다고 생각하며 사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살아 보고 결혼하겠다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진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혼율은 더 높아지고 결혼의 신성함은 개인의 자유와 행복이라는 미명 아래 희생당하고 있습니다.

 

가정은 사람되라고 주신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가장 가까이서 서로 함께 부딪끼며 하나 됨의 의미를 배워가는 것입니다. 가정 안에서 남편으로, 아내로, 남자로, 여자로 사랑을 배우면서 삼위 하나님이 한 하나님이신 것처럼 하나님이 원하시는 사람으로 만들어져 가는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께서 우리 모두의 가정에 복을 부어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마라나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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